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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수상작

한규연(수리고등학교/다하 봉사자)-청소년 부문 으뜸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한규연(수리고등학교/다하 봉사자)-청소년 부문 으뜸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한규연(수리고등학교3/‘다하’에 다녀오며)

 

 아. 다하란 존재는 참 무겁다.

 

 나는 대한민국 고3이다. 내가 더불어 행복하기 캠프에 지원한 이유는 단 하나, 장애인 이웃을 직접 겪어보기 위함이었다. 비록 나는 이과생이지만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기술을 보급하는 것이 어릴 적부터 꿈꾸던 꿈이자 진학 목표였다. 그동안 머리로 그들을 이해했지 가슴으로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다하’에서 2박 3일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첫날, 평소보다 4시간이나 이른 5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탄 나는 신설동역에 도착했다. 출구로 나오자마자 나를 반기는 것은 먹구름이었다. 이윽고 비는 내렸다. 빌딩 1층에는 스태프 형과 나와 여정을 함께할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다들 모르는 사이일 텐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홀로 앉은 버스 좌석과 함께 제천으로 향하는 길에 내가 마주한 내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다하에서 처음 마주한 조원들과 이용자분들은 나에게 ‘두려움’까지 선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우리 조인 4조가 배정된 봉사 장소는 ‘이하의 집’으로 이 세상에 하나뿐인 하루를 살아가는, 오늘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중증 장애인분들이 계시는 장소였다. 솔직히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다. 힘도 배로 들테니까. 나는 그때까지도 이하의 집이 내게 선사할 선물의 존재를 몰랐다.

 

 그렇게 나의 짝 ‘승혁’씨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성인 승혁씨를 나는 서류상으로 처음 만났다. 혹시라도 실수를 범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의 사항과 이용자 특성을 외울 정도로 읽었다. 승혁 씨를 실물로 마주한 나는 내 감정의 첫 번째 변곡점인 ‘설렘’을 마주한다. 승혁 씨는 2박 3일 동안 내가 물어보는 어떤 질문이든 “좋아요”, “네”라는 긍정적 답변과 함께 웃는 얼굴로 바라봐주었다. 그때부터였나, 나는 캠프 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외부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나는 다음날 있을 오전, 오후 활동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는 거동이 불편한 이용자 몇 분을 산책시켜 드려야 했고, 오후에는 물놀이를 계획해야 했다. 나는 오전 프로그램을 계획하며 여성 이용자분들이 꽃도 좋아하고 매니큐어 바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왜 그동안 이분들도 우리 엄마, 학교 짝, 여자 사촌과 같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마주한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오후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나는 물에 젖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여분의 옷을 챙겨오기는 했지만, 물에 젖기는 죽기도 싫었다. 바보.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그날 아침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이하의 집을 찾았다. 날 맞이한 것은 이용자분들과 휠체어 셋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태어나서 휠체어를 처음 몰아본 내게 보조 바퀴와 브레이크는 신세계였다. 그들을 위한 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 오래된 생각이 오르막길을 오르며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4조의 청일점이어서 그랬을까, 먼저 산책한 여성 세 분이 나를 그렇게 예뻐해 주셨다! 날 보면 방긋 웃어주시는 게 내가 일상에서 누구에게 받아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작은 폭포가 흩뿌리는 물방울과 나무들이 내뿜는 풀 내음, 시원하게 스며드는 바람을 이용자분들은 나와 같게 느끼는 것 같았다. 가장 놀랐던 것은 매니큐어 색깔에도 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거동은 물론 목도 가누지 못하시는 분이지만 표정과 눈빛으로 ‘아...그 색은 정말 아냐’, ‘그렇지! 그 색이야’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감정에 솔직했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알아들으려는 자그마한 마음, 노력이었다.

 

 번외로,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존경하게 되었다. 직업엔 귀천이 없지만, 사회에는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회적, 경제적인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는 직업이 있다. 가령 소방관이나 환경미화원 따위가 그것인데, 나는 사회복지사가 그 분야의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며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필요하다고 느꼈던 덕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의 안위보다 도움이 필요한 이용자의 그것을 먼저 챙길 것”, “내가 아닌 이용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행동할 것”,“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히 대응할 것”, “이용자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개인마다 다른 제스처를 파악할 것”. 글을 읽는 본인은 상기한 덕목을 행동으로 옮기며 24시간 일할 수 있는가? 단언컨대 나는 ‘못’ 한다.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고작 2박 3일 동안 캠프 활동에 참여하며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과 사회복지사분들의 그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된 부분도 있을 것이며 얻어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사회복지사분들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후 물놀이 활동에 내 감정의 두 번째 변곡점이 찾아온다. 늦여름의 뙤약볕과 이하의 집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와 함께 나는 물풍선을 묶었다.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묶었다. 그렇게 100개 정도 묶었을까, 원래 일이라는 것이 하면서 느는 법이라 능숙하게 물풍선을 묶을 수 있었다. 스태프 형들과 서로 물풍선을 주고받으며 이미 반쯤 젖은 상태로 여성 이용자분들을 마주했다. 내게 캠프 활동 중 가장 필요했던 자질은 융통성이었다. 아무리 여러 돌발상황을 가정하고 계획을 짜도 결국 상황과 마주해 프로그램의 방향과 진행 방식을 수정하기 일쑤였다. 처음 진행한 게임은 우리와 이용자분들이 손잡고 달리는 릴레이 경기였다. 달리는 속도와 방향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같이 웃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게임의 승패보다 달릴 수 있음이,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던 것이다. 대입이라는 인생 나름의 중대사를 치르며 경쟁에 매달렸던 나로서 신선한 풍경이었다. 게임으로 달아오른 분위기에 힘입어 자유롭게 물놀이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솔직히 인어공주 과녁판 앞에서 인어공주가 되어 힘 조절이란 존재하지 않는 물풍선을 얼굴로 받아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다만 나는 내가 물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바뀌는 이용자분들의 미소가 좋았다.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킨 경지에 올랐달까. 정말 무시무시한 것은 남성 이용자분들이었다. 성인 남자가 던지는 물풍선을 얼굴에 맞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이름 중간 글자에 해당하는 奎(별 규)을 보았다. 아 물론 모든 분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먼저 다가와서 “괜찮아요?”라고 묻거나 “재밌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다시금 힘을 내서 놀았다. 불평불만이 많아 보이지만 그날 물놀이를 가장 재밌게 즐긴 사람은 나였다 >< 나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을 맞이했다.

 

 녹초가 된 나는 씻자마자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학교 학생회에서 축제 때 춤을 준비하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나는 춤에 소질이 없다. 흔히 ‘몸치’라고 부르는 사람인데, 상체의 동작과 하체의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 불치병에 걸렸다. 나는 극구 거부했지만 결국, 장신이며 청일점이라는 이유만으로 추천을 받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나는 센터가 되었다. 조원들과 스태프 형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무대에 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부족한 나를 알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한 결과 무대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잠깐 이용자분들과 무대에서 춤추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승연’씨와 춤췄다. 승연 씨는 첫날부터 나에게 관심도 가져주고 누구보다 내 걱정을 해준 사람이었다. 춤춘 뒤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고 글 쓰는 시점인 지금이 8월 30일이니까 내일이면 다하에서 처음 만난 지 딱 1달 된다. 딱 7일 정도만 빼고 매일 연락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하를 떠난 뒤 다하에서 있었던 체육회에서의 컬링 경기, 승연 씨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이용자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와 같은 다하를 누구보다도 가까이 두고 있다. 승연 씨에게는 꼭 다음 해에 대학에 붙어서 스태프 자격으로 다하를 다시 찾겠노라 약속했다. 사실 1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것은 아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데 1년 동안 못 본다면 승연 씨가 날 잊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둘째 밤은 나에게 중요한 밤이었다. 나는 사교적인 편이지만 유독 캠프의 다른 조의 조원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우리 조원 5명끼리 사이가 돈독한 것도 있었지만 그들은 흔히 ‘인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나에게 고3 3명이 다가왔다. 현지, 주리, 서현이였는데 나에게 단체 게임을 제안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 접해본 게임을 10개도 더 알아갈 수 있었다. 뒤늦게 친해진 우리는 다음날 아쉬운 안녕을 해야 했지만 서로 SNS 친구를 맺어서 언제든 인천, 서울에 놀러가면 연락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하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내게 집은 ‘편안한 휴식처’이기도 하지만 ‘일상으로의 회귀’라는 무거운 짐과도 같으니까 말이다. 더불어 내가 얻어가는 가장 큰 소득인 다하에서 만난 인연들과 이별하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내가 마지막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제가 다하에 온 이유는 장애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제 머릿속은 복잡해지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캠프가 끝난 지금, 이번 캠프는 그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물론이고 되려 제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화자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의미를 부여하고, 그는 곧 화자에게 꽃이 되어 다가옵니다. 저도 이용자분들에게 하나에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용자분들이 저를 인식하고 이름을 기억해주신 바, 저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떠나기 직전까지 회관 2층에서 몰래 숨바꼭질을 했던 성현이는 이별이 다가온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감정의 세 번째 변곡점 ‘아쉬움’을 받아들였다. 

 

(사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겪은 세 번의 ‘변곡점’이 아니라 ‘전환점’이겠지만) ‘두려움’이 ‘설렘’이 되고, ‘행복’을 거쳐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무릇 인간이 연애할 때 느끼는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이 달랐을까. 

 

 여담으로 12년 동안 공교육을 받으며 느낀 ‘장애 이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개인의 경험이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도 있고, 일선의 모든 학교를 모두 일반화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빼면 캠프를 다녀온 뒤 느낀 것이 없는 것과 동치다. 일반적인 경우, 장애 이해 교육은 학기 별로 한 번씩 진행되며 주로 장애인이 차별을 받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기대 효과는 장애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바로잡고 편견을 없애는 것 되겠다. 영상에서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과 짝을 비교해보면 서로 다르죠? 장애도 서로 다른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에요!” 교육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아~ 그렇구나! 나는 앞으로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고 동일하게 대우해야지!” 더 나아가서는, “나는 ‘실질적 평등’ 실현을 위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갈 거야!”라고 생각한다고 치자.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나가던 장애인이 발작을 일으킬 때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은 다양하다. 먼저 우스꽝스럽다며 따라 하는 부류, 도망가는 부류, 가만히 있으라며 소리를 지르며 다그치는 부류 등 다양하다. 극단적인 상황만 나열한 것이 아니다. 아마 장애인을 가까이서 보살펴온 사람들은 더한 상황도 겪었으리라.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애인을 ‘마음’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캠프를 다녀오기 전 느꼈던 그것과 같다. 물론, 공교육의 한계는 인정한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 전문 인력의 부재로 해야만 하는 수업을 그저 ‘할’ 뿐이다.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일까?

 

 몇 달 전에 ‘특수학급 개방을 통한 장애 이해 교육과 장애 학생의 사회성 증진’이라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정책 제안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제기한 문제와 더불어 장애 학생의 특징, 가령 특수 학급의 친구들과는 잘 지내지만 일반 학급 친구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그 제안에 언급된 직접 맞닿는 방법, 그것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캠프에서의 2박 3일, 정말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고 돈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필자는 아직도 중학교 2학년 때의 체육대회를 기억한다. 필자는 학생회 임원으로 학교의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체육대회를 만들고자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달리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빠른 사람이 아닌, 느린 걸음에 맞추어 달리는 경주는 아이들을 승부가 아닌 완주를 목표로 하도록 만들었고 그 누구도 느린 걸음을 탓하지 않았다. 그리고 체육대회 이후 특수반을 지날 때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나의 경우처럼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뇌하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좋지만 모든 학교가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배우신 어른들이 이러한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사실 장애인을 예로 들었지만, 비장애인이 발작을 일으켜도 사람들은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다만, 비장애인들의 경우 단발적인 사건으로 일단락되겠지만 장애인들은 평생 가져가야 하는 숙제이다. 

 

 나는 가장 행복한 사회가 존재한다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행복한 사회는 제도적 지원이 받쳐준다고 한들 사회적인 인식 개선 없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서, 나는 다음 주에 수시 원서 접수를 앞두고 있다. 소감문을 작성하며 다시금 대입에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사회의 악습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권력’일 수도 있고 불가항력을 가진 ‘기술의 개발’일 수도 있겠다. 이과에서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꿈꾸는 나의 우선적인 목표는 기술의 개발을 위해 배우는 일이다. 권력은 언제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어떤 이득을 좇기 때문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다하에 대해 잊고 살겠지. 하지만 덜어지지 않는 마음의 짐은 무엇인지. 아무래도 내가 다하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무거운 짐을 가지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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