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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 수상작

오유진

엘리엘동산에서 느낀 행복

오유진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엘리엘동산 선생님과 마주쳐서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스태프 선생님들 사이에서 눈물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캠프 첫날 밤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별명까지 붙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단 오히려 좋다. 그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 그 눈물의 의미는 속상함이었다. 그 속상함은 두 가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짝꿍으로서 느끼는 자괴감, 그리고 조장으로서 느끼는 자괴감.

짝꿍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내 짝꿍은 언어장애를 갖고 계신 지순희 언니였다. 처음에는 순희 언니와 소통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언니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서 순희 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때마다 선생님을 쳐다보면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표현을 하실 때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게 너무 죄송했다. 얼마나 답답하실까. 만약 나였다면, 만약 상대방이 계속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포기해버리고 무기력해졌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순희 언니의 표현을 잘 알아듣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죄송하고 속상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말 힘든 거구나 느꼈고 소통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었다. , 내가 열심히 말을 걸어도 순희 언니께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순희 언니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언니께 잘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한 마음이 컸다.

조장을 했던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일단 나는 정말로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 이 캠프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걸 조원들도 느꼈는지 나는 만장일치로 조장으로 뽑혔고 조를 대표하고 활동을 이끄는 데에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짝꿍을 챙기느라 활동 설명을 듣지 못하기도 했고, 아이디어를 잘 못 냈고,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려웠다. 그렇게 자신감도 잃고 조장으로서 잘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에 조원들에게 미안했다. 혹시라도 조원 한명이 표정이 좋지 않으면 나 때문인가 생각했고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을까봐 겁이 났다.

그렇게 나는 짝꿍에게 잘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자괴감과 조장으로서 무능력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자괴감 등의 복합적인 심정으로 속상함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그때는 속상함을 의미했던 눈물이 왜 지금은 행복을 의미할까.

첫째 날 밤에 엘리엘동산 캠프 수년 차 경력을 가진 우리 조 대학생 스태프 언니인 주현이 언니가 이곳 이용인분들은 일찍 주무신다고, 활동에 반응이 없고 지쳐 보이시는 건 피곤해서라고, 날 싫어하시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또 몇 년 동안 캠프 하면서 보면 순희 언니와 짝꿍을 했던 아이들은 한 번씩 다 운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잘 하고 있다고, 아주 잘 챙겨드리고 있는 거라고 했다. 빈말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말이 내게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사실 무엇보다도 가장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순희 언니의 따뜻한 손이었던 것 같다. 순희 언니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닌가 의심은 했어도 확신은 하지 않았던 게 바로 순희 언니의 손 덕분이었다. 내 말에 반응은 없으셔도 항상 나의 손을 꼭 잡고 계셨고 손을 놓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의자에 앉으실 때면 내 자리까지 꼭 챙겨주셨고, 뭔가를 그려야 할 때면 내 펜을 꼭 챙겨주셨다. 그걸 깨달은 후로 다시는 순희 언니가 날 싫어하는 것 같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이 많고 따뜻하신 분이신데 날 싫어한다고 생각하다니, 나도 아직 어리긴 한가보다. 소통이 잘 안돼서 힘들었던 것도 둘째 날부터는 괜찮아졌다. 엘리엘동산 선생님들께서 순희 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소통하는지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 날 부터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겼고 순희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고집 많으시고 경로 이탈하시는 것도 힘들기 보다는 보다는 즐거운 것으로 다가왔다. 내가 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못 찾을 때면 찾을 때까지 바닥을 보며 돌아다니시고 뒷정리도 척척 해내시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조금 놀라기도 했고, 우리 조 작품 외의 다른 조 작품에 투표해야 하는데 계속 우리 조 작품이 제일 좋다며 고집 부리실 때는 곤란하면서도 기뻤다. 한눈 판 사이에 혼자 돌아다니시는 걸 발견해서 내가 뛰어가야 했던 것도 솔직히 조금 재미있었고, 워터 미션을 끝내고 물총놀이를 하느라 옷이 젖어 돗자리에 앉기 좀 그랬는데 자기 옆에 앉으라고 고집을 부리실 땐 기분이 좋았다. 게시판을 계속 보시며 우리가 찍힌 사진을 찾아다니실 때나, 스토리 북을 만들 때 내가 우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꼭 붙이자고 표현하실 때는 나를 향한 순희 언니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순희 언니와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할 때, 빨리 짐 싸러 가야하는데 순희 언니께서 밥을 늦게 드셔서 곤란해 하고 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먼저 가서 짐 싸라고 날 보내주셔서 식당을 나와 숙소로 가는 중이었다. 작별시간이 따로 없는 줄도 모르고 그냥 별 생각 없이 가고 있었는데 순희 언니가 나를 따라오셨다. 순희 언니께서는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고 계셨나보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울컥한다. 언니는 포옹을 하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사랑해.”

작별인사였다. 처음으로 알아들은 말이었다. 3일 동안 언니의 말을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고 다 제스처로만 알아듣고 소통 했었는데 사랑해라는 말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때 언니의 그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가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느낀 나는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웃으며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말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행복했다. 첫째 날 밤 흘렸던 눈물 덕분에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는 이유, 처음에 언니께서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잘해드리려 노력할 수 있었고, 언니의 애정을 느꼈을 때 더 기뻐할 수 있었다. 언니의 사랑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었고, 내 오해였다는 것을 알면서 반성도 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소통하는 게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사랑한단 말을 알아들었을 때 굉장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고난이 없었다면 기쁨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조장으로서의 부담감은 캠프 마지막 날까지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아질 수 있었던 건, 우리 조원들이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것,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수 조원으로도 뽑아주고 날 기특하게 여겨주었다. 무엇보다도 힐링엽서 덕분에 조장으로서 느낀 자괴감들이 다 녹아버렸다고 할 수 있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롤링페이퍼와 힐링엽서를 읽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그 눈물은 분명 속상함을 의미하는 눈물은 아니었다. 조장하느라 고생했다, 너무 잘했다, 고맙다, 보고 배웠다, 다음에 또 조장해라 등등 따뜻한 말들이 모두 내게 다가와 나를 위로해주었다. 이렇게 모두들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었는데, 나 혼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못살게 굴었구나 깨닫고 반성했다. 감동도 많이 받고 정말로 고마웠다. 모두들 내가 잘했다고 해주었지만 나는 내가 잘나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나를 잘 따라주었고 나도 조원들에게 배운 게 많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애들은 여자애들보다 비교적 이용인분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학찬이나 권민이가 이용인분들과 재밌게 장난도 치고 함께 웃는 모습을 보며 배우기도 했고, 차분함을 잃지 않는 재영이를 보며 본받기도 했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주고 날 위로해주어 믿음직스러웠던 동휘 언니에게 많이 기대기도 했다.

그 때 버스 안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는 첫째 날 밤 흘린 눈물의 의미와는 아주 다르게 기쁨, 고마움, 아쉬움 등의 여러 감정들인데, 그 감정들을 하나로 축약해서 말해보자면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행복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캠프기간 동안 조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동생들, 동갑 친구, 3언니, 대학생 스태프 언니 오빠들과도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처음에 어색한 상태에서 먼저 말 걸고 친해지는 과정을 겪는 것도 정말 즐거웠고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장난을 치는 것, 밤에 새벽까지 게임을 하며 놀았던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했던 23일 동안 많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캠프를 신청한 이유에 장애인을 만나보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도 있었는데 이번 캠프를 통해 장애인들도 한명한명이 모두 다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모두 따뜻한 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예전에는 길에서 장애인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는데, 캠프 이후로는 오히려 더 눈이 가고 웬만한 건 뭐든 혼자서도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며 미소가 번지기도 한다.

 

엘리엘동산에 있는 동안 정말 행복했고, 엘리엘동산에서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지금, 난 정말 행복하다. 왜 캠프 이름이 더불어 행복하기인지 잘 알 것 같다. USB에 담긴 사진들도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고, 캠프를 통해 배웠던 것들과 느꼈던 행복들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내년에 다시 엘리엘동산 캠프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는 모습이나 자신감 없는 모습보다는 더 많이 웃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순희 언니께 한 번 더 제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행복하기 캠프에 참여한 것은 내가 올해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다. ‘더불어 행복하기캠프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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